계획건축물부문 심사평

심사위원장 / 부대진 (주)진아건축도시종합건축사(사) 대표

주어진 계획건축물부문공모 주제설명문에 「정체성」이란 단어가 무려 5번이나 등장한다. 출품자들은 「정체성」이란 단어에 대한 해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생각되어 한번쯤 이 단어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하여 심사를 시작하기 전에 심사위원들과 주제에 대한 의견교환이 있었다. 「정체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정체-성 (正體性) :「명」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든 성질. -국어사전"

정체성은 높은 질(質-quality)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본심사의 기준은 계획 작품의 물리적인 질(質)에 맞추어졌다. 프로그램(용도)은 사회적인 상황에 따라 바뀐다. 200년 된 교회가 나이트클럽으로 사용되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안의 사회적/문화적 정당성을 가지고 접근한 계획안들은 건축적이지 않다. 정치적이다. 여기에는 점수를 주지 않았다. 건축의 정체성을 논의할 때 우리의 고건축과의 연관성을 많이 본다. 이는 지금까지 살아남은 우리의 고건축물들은 대부분 상당히 높은 질(質)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들 건물의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성질'은 역시 설계/시공의 높은 질(質)이다. 시간은 옥석(玉石)을 가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시간을 견뎌낸 고건축물들은 질(質) 높은 옥(玉)이 많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출품작들에는 역사적 '축'이 많이 등장한다. 이들 건축물(고건축)들이 가지고 있는 '축'은 최고의 건축물을 실현한 뛰어난 설계와 시공에 들어간 건축가(장인) 정신이다. 즉, 정체성의 '축'은 풍수지리적인 선(line)이나 도로나 지형적인 축이 아니라, 수 백년에 거쳐서 내려오는 질(質-quality)를 사수하기 위한 건축가들의 전통이다. 우리가 정체성을 잃었다고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은 질(質)보다는 양(量)을 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정체성을 중요시 하는 것도 양(量)보다는 질(質)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형태는 재료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지금 계획되는 건물의 형태를 정체성 확보 차원에서 고건축물의 형태로 한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재료와 환경이 바뀌면 형태는 바뀌기 때문이다. 단, 고건축물이 인접한 경우에는 이를 환경으로 받아들여 형태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이는 경사지를 고려한 설계를 하는 것과 같다. 그 방법은 모사/변형/대비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계획안의 질(質-quality)은 아이디어와 이를 반영한 형태/공간에 의해 결정된다. (지어진 건물의 질은 아이디어, 형태/공간, 시공/재료에 의해 결정된다.) 좋은 아이디어는 신선하고,구체적이고, 견고하다. 최종적으로는 아이디어가 형상화 되어야한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의 형상은 아름다워야 한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다라는 생각은 통념(通念)에 불과하다. 평생을 건축에 바친 건축가들 눈에는 아름다움의 정도는 정확히 평가된다. 지휘자 캬라얀이 일반인 보다는 음악을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는 이유는 아름다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며, 건축가를 포함한 수준 있는 예술가들 또한 각자의 분야에서 정확한 기준이 있다. Quality를 논한다는 자체가 기준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The 3rd way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아름답게 표현하였기에 대상을 수여했다. 제목이 이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작가는 제3의 길(The 3rd way)을 '대지에 적용되는 각 도시적, 역사적 요소들의 장점만을 수용하는 길'로 규명하고 있다.'제3의 길'을 사용하였기에 대지 조건과 작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즉, 건축 잡지에 나오는 스타일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신만의 진솔한 형태로 최종적인 표현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제안된 건물의 스케일이나 리듬감 등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진정으로 주변상황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역력하며, 특히 팔달문의 양쪽으로 인접한 메스의 처리에서는 뛰어난 미적(美的)감각이 보인다. 즉, 자칫하면 유치한 곡선이 되기 쉬운 형태를 제안하면서도 이를 통하여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시각적으로는 연결된 통합된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세히 보면 팔달문의 곡선과는 반대되는 형태로 제안을 하여 두 곡선 사이의 공간을 긴장감으로 충전을 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주 용기있는 제안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전통의 곡선미를 모방하지 않고 이를 제3의 방법으로 풀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전체적인 presentation의 질 또한 가장 높았음을 여기서 밝힌다.

은상을 수상한 Urban Topography는 지형적 건물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가 뛰어난 작품이다. 즉, 10km가 넘는 대지를 '건축'하지 않고 '조경'하는 개념으로 설계를 접근한 점이 좋았다. 아쉬운 점은 지형적 건물이라는 큰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좀더 디테일 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큰 스케일에서 만들어 놓은 본 작품에 중간과 작은 스케일의 아이디어가 '중첩'을 이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너무 큰 스케일의 아이디어로만 전체를 구성하기에는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은상을 수상한 시대교감(時代交感)은 기존의 한옥들과 모던한 새로운 건물들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프로그램적으로는 다른 두 형태의 건물들을 결합시키고 있다. 형태적으로는 다르지만 외관적 스케일은 비슷한 구성을 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던한 건물들의 내부 스케일은 시존 한옥들보다 훨씬 큰 스케일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들 두 다른 종류의 건물들의 중첩이 이루어내는 외부 공간의 스케일 또한 한옥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마당의 스케일과는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건축의 관입이 오히려 적절한 대비를 통해서 기존의 한옥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수상을 하는 바이다.

동상을 수상한 작품들 또한 많은 생각을 건축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상생'은 아름다운 단면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조경적인 건축을 하여 건물과 대지가 잘 결합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상해거리 읽기' 와 '존재-교감-계승' 는 주변 환경적 요인을 잘 접목시킨 예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체성은 높은 질의 문제이며, 프로그램보다는 아이디어와 건축적 형태/공간에 노력을 우리의 젊은 건축학도들이 포커스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심사위원 / 민승열 한빛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고속 경제 성장의 시대 속에서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보여 주어야 할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는 중요 건축물들이 마구 부셔지고 소멸되어 가는 모습을 볼 때 정말 안타깝기만 한 심정이다. 계획 건축물부문에서 <문화 유산으로서의 도시 건축>을 주제로 계획함은 건축을 임하는 자세가 보다 엄숙하고 경건하여야 한다는 자세를 숙지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각기 지역별로 역사의 중요성을 가진 특성 있는 부지를 선정하여 과거 시대의 생활과 관습을 현대로 승화 시키 고져 노력한 점 상당히 높은 평가를 하고 싶다. 지역 나름대로 보존과 새로운 문화 창출을 잘 조화시켜 계속 승계 하고픈 작가의 새로운 시도들은 우리 미래 건축에 주춧돌이 될 것 같다.

금상으로 선정된 작품은 단절된 화성복원 구간의 안타까움을 역사적으로 재현 시켜 보고져 노력한 점, 상당한 순수성과 형태의 세련미 가능성으로 많은 점수를 확보한 작품이다. 현대와 과거의 교차점에 선 작가의 는 제목 그대로 작가의 심정을 건축적으로 환원 표현한 것 같다.

<URBAN TOPOGRAPHY> 는 폐선된 광주 지역 주민의 애환이 담긴 철로 부지에 박물관을 비롯한 각종 이벤트 행사등 현대 생활상으로 탈바꿈 새로운 도시 공간 형태로 변화시킨 점 높이 평가한다.

<시대교감>은 종묘의 한국적 색다른 분위기로 전통문화 거리를 재현한 점 훌륭하였다. 골목길을 다시 만들되 과거를 잃지 않고 한옥을 건립하되 담소를 나눌 처마 밑을 버리지 않았다. 세련된 형태미의 아쉬움이 숙제로 남은 작품이다.

나머지 출품작품들도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 점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나친 표현 위주의 계획보다는 기능과 공간구성을 잘 조화 시켜 실제 만들어지는 건축물을 계획하는 자세로 임하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심사위원 / 권태문 인천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금상 - [The 3rd Way] 문화재인 팔달문 주변의 현대화된 상업시설을 재구성하여 옛 수원화성의 이미지가 도출되도록 팔달문과 성곽을 도시적, 역사적으로 연계시키려한 깊은 건축적 해석이 돋보인다. 다만 상업시설의 조형에 한국적 감흥이 부족하다.

은상 - [Urban Topography] 구 남광주역사 부지의 다양한 역사적 의미를 함축시킨 새로운 의미의 대중을 위한 건축적 공간 구성방법이 흥미롭다. 특히 10.8㎞의 상징적인 선적공간과 몇 켜로 구성시킨 인공대지의 새로운 도시지형 구축안이 참신하다.

은상 - [시대교감] 전통한옥을 Renovation하여 역사를 보존시키려고 노력한 계획안이 친근감을 높여준다. 다만 전통한옥의 형태와 연계된 현대적 건물형태가 이질감을 준다.

동상 - [상생] 전통과 현대의 구분을 없애기 위해 시각적 경계를 허물려는 건축적 방법이 참신하다. 다만 견축형태가 외국건축을 닮았다.

동상 - [Title Map One's Place] 부산의 상해거리 재구성안을 이 지역의 질서회복과 장소성을 높이는 중요한 해법이겠다. 역사전통인자와 현대적 매개인자로 건축조형에 투명성, 명료성을 강조한 디자인 방안이 흥미롭다.

동상 - [존재-교감-계승] 운현궁의 역사를 전시 concept motive로 수용한 이 체험관은 전통한옥의 형태를 매개적으로 사용하여 운현궁과 역사적, 형태적으로 교감하는 공간감을 느끼게 한 노력이 돋보인다.